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68세. 치밀한 미스터리와 인간 심리를 깊이 있게 조명하며 장르문학의 영역을 넓혀온 고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을 이어간 끝에 수많은 작품을 남기고 독자 곁을 떠났다. 비보가 전해지자 일본 현지는 물론 국내 출판계와 독자들 사이에서도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본 출판사 고단샤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지난 23일 새벽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례는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졌으며, 출판사는 유가족에 대한 취재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조의금과 조화, 조전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며 추후 별도의 고별식 일정이 마련될 경우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195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히가시노 게이고는 오사카부립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엔지니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꾸준히 소설을 써 온 그는 1985년 '방과후'로 제3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전업 작가로 전향해 오랜 시간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며 일본을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 잡았다.
그의 작품은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기존 추리소설의 전형에서 벗어나 인간의 감정과 윤리, 사회 구조에 질문을 던지는 서사로 평가받았다. '비밀'을 통해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용의자 X의 헌신'으로는 나오키상과 본격미스터리대상을 동시에 거머쥐었다. 대표작 '용의자 X의 헌신'은 수학자의 희생과 사랑을 중심으로 완전범죄와 인간 본성을 세밀하게 풀어내어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백야행'은 비극적인 운명을 짊어진 두 인물의 삶을 통해 내면의 어둠과 사회적 모순을 조명했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위로와 희망을 전하며 장르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국내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넓은 독자층을 확보한 해외 작가였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지키며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고,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 '악의', '방황하는 칼날' 등 수많은 작품이 사랑받았다. 그의 작품 상당수는 한국에서도 영화와 드라마로 재탄생하며 원작 이상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출판계에서는 그의 성공 요인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갖춘 서사 능력을 꼽는다. 정교한 트릭을 기반으로 한 미스터리 구조 속에서도 인물들의 감정과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내며 장르문학을 폭넓은 독자층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확장시켰다는 분석이다. 범죄를 사건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바라보는 시선은 오랜 세월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왕성한 집필 활동 역시 그의 상징이었다. 단독 저서는 모두 106권에 이르며 일본 내 누적 발행 부수는 1억 부를 웃돌았다. 작품은 41개 국가와 지역에서 번역·출간돼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았다. 투병 중에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최근 '갈릴레오' 시리즈의 최신작 '투명한 나선'을 선보였고, 출간 예정이었던 '영원의 기억'은 결국 마지막 작품으로 남게 됐다.
갑작스러운 소식이 전해진 이후 국내 주요 서점들은 추모 기획전을 마련하며 고인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온라인 공간을 통해 애도를 표하고 있으며, 일부 문화예술계 인사들 역시 고인의 작품을 추억하며 존경의 마음을 남겼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평생 수많은 사건을 창조했지만 그가 독자들에게 남긴 것은 반전이나 추리의 쾌감만은 아니었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선과 정의, 용서, 선택에 대한 질문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 독자들의 마음속에 남아왔다. 그의 삶은 막을 내렸지만, 수백만 독자가 함께한 이야기는 앞으로도 새로운 독자들을 만나며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 : 연합뉴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현대문학], '용의자X의 헌신' [랜덤하우스코리아], '가공범' [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