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시상식인 '백상예술대상'이 올해도 깊은 울림과 진한 여운을 남겼다. 화려한 스타들의 축제였지만 무대 위를 채운 것은 결국 배우들의 시간과 진심이었다. 웃음과 눈물, 위로와 공감이 교차한 올해 시상식의 중심에는 오랜 무명과 치열한 시간을 견뎌낸 두 배우, 유해진과 류승룡이 있었다.
지난 8일 코엑스 D홀에서 열린 '제62회 백상예술대상 with 구찌'는 방송·영화·연극·뮤지컬 부문을 아우르며 한 해 대중문화계를 결산하는 자리로 꾸며졌다. 방송인 신동엽, 배우 수지, 박보검이 진행을 맡아 안정적인 호흡으로 시상식을 이끌었고 현장에는 수많은 배우와 제작진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이날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는 대상 수상자들에게 쏠렸다. 영화 부문 대상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유해진에게 돌아갔다. 작품은 1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극장가 흥행을 견인했고, 유해진은 특유의 생활 밀착형 연기와 인간적인 감정 표현으로 극 전체의 중심축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수상 직후 유해진은 특유의 담백한 화법으로 현장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는 “연극을 그만두고 영화를 시작할 때는 그냥 먹고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긴 무명 시절을 떠올렸다. 이어 “조연상만 받아도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연기해왔는데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돼 얼떨떨하다”고 말하며 벅찬 감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후배 배우 박지훈을 향한 진심 어린 감사였다. 유해진은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 배우의 눈빛과 호흡이 중요하다”며 “좋은 감정을 건네준 지훈이 덕분에 나도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선배 배우가 후배에게 공을 돌리는 모습은 시상식장의 분위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방송 부문 대상의 영광은 JTBC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류승룡에게 돌아갔다. 중년 가장의 현실과 상실, 회복을 섬세하게 그려낸 류승룡은 작품을 통해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시청자들의 뜨거운 지지를 받았다. 특히 류승룡은 수상 소감에서 유해진과의 오랜 인연을 언급하며 눈길을 끌었다. 그는 “30년 전 함께 아르바이트하던 시절이 떠오른다”며 “그때의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오랜 무명 시절을 함께 견뎌낸 두 배우가 나란히 대상 트로피를 들어 올린 순간은 이날 시상식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혔다.
류승룡은 이어 작품 속 캐릭터 ‘김낙수’를 언급하며 깊은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누군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건 거창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라고 생각한다”며 “전국의 모든 낙수야 행복해라”라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현실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는 드라마의 메시지와도 맞닿아 있었다.

신인 배우들의 활약 역시 두드러졌다. 방송 부문 신인상은 이채민과 방효린이 차지했다. 이채민은 tvN 드라마 '폭군의 셰프'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방효린은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로 신인답지 않은 몰입감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영화 부문 신인상은 '왕과 사는 남자'의 박지훈과 '세계의 주인'의 서수빈에게 돌아갔다. 박지훈은 짧지만 진정성 있는 소감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끝까지 믿어준 장항준 감독님과 유해진 선배에게 감사하다”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배우들의 인간적인 고백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방송 부문 여자 조연상을 받은 '파인: 촌뜨기들'의 임수정은 최근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그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며 “이 상이 다시 앞으로 걸어가라는 어머니의 말처럼 느껴진다”고 담담히 말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도 상실의 감정을 숨기지 못한 진심 어린 고백은 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붉혔다.
연극 부문 연기상을 수상한 '프리마 파시'의 김신록 역시 무대에 오르자마자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모든 연극 배우들과 이 영광을 나누고 싶다”며 연극 무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대중적으로는 드라마와 영화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결국 자신의 뿌리인 연극을 향한 깊은 애정이 묻어나는 순간이었다.

예능 부문에서도 진심 어린 수상 소감이 이어졌다. 남자 예능상을 받은 기안84은 “만화가로 살다가 우연히 방송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오게 됐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여자 예능상을 2년 연속 수상한 이수지는 울먹이며 “웃음을 주는 사람이지만 무너질 때도 많다”고 털어놨고, 선배 신동엽에게 받은 조언을 언급하며 감사함을 전했다.
최우수 연기상 부문에서는 쟁쟁한 배우들이 이름을 올렸다. 현빈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TV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받으며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객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배우 손예진이 환하게 웃는 장면도 포착돼 훈훈함을 더했다.
또 다른 TV 부문 수상자인 tvN '미지의 서울'의 박보영은 자신의 불안과 경쟁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시청자의 마음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는 “남의 재능만 보고 스스로를 힘들게 한 적이 많았다”며 “선의의 경쟁을 함께해준 배우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꾸밈없는 진심은 오히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영화 부문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휴민트'의 박정민과 '만약에 우리'의 문가영 역시 개성 넘치는 소감으로 분위기를 달궜다. 박정민은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현장 분위기를 유쾌하게 리드했고, 문가영은 데뷔 20주년을 맞은 소회를 전하며 “더 다양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팬 투표로 선정된 네이버인기상은 박지훈과 임윤아가 차지했다. 박지훈과 임윤아는 각각 "팬이 주는 상이라 더 뜻깊다. 언제나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 "투표 결과를 보고 놀랐다.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 넘치도록 응원해 주는 팬들 너무 고맙다. 앞으로 다양한 작품으로 찾아뵙겠다"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구찌 임팩트 어워드 부문에서는 극장 안팎으로 영향력 있는 임팩트를 보여준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수상했다. 무대에 오른 장항준 감독은 “이렇게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명품을 산다면 구찌만 사겠다”는 유쾌한 소감으로 현장에 웃음을 안겼다. 이어 “어려워진 한국 영화 산업 속에서도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왕과 사는 남자’를 함께 만든 제작진과 스태프, 그리고 배우 유해진, 박지훈, 유지태, 전미도, 김민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올해 백상은 뮤지컬 부문이 신설되며 외연을 넓혔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남겼다. 뮤지컬 '비틀쥬스'의 김준수가 뮤지컬 연기상의 첫 수상자가 됐고, 작품상은 '몽유도원'이 차지했다. 한국 공연예술계의 성장과 다양성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시상식 말미에는 세상을 떠난 문화예술인들을 기리는 추모 무대가 이어졌다. 배우 유연석과 음악감독 이병우가 무대에 올라 헌정 공연을 펼쳤고 스크린에는 고(故) 안성기, 고(故) 이순재, 고(故) 전유성 등의 생전 모습이 흘러나왔다. 객석 곳곳에서는 눈물을 훔치는 배우들의 모습이 포착됐고, 화려한 축제의 끝은 예술을 향한 존경과 기억으로 마무리됐다.
올해 '백상예술대상'은 긴 시간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예술인들의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 무대였다. 누군가는 웃었고 누군가는 울었지만, 그 모든 순간은 결국 “좋은 작품과 좋은 사람”이라는 하나의 가치로 연결되고 있었다.
다음은 제62회 백상예술대상 수상자(작) 명단이다.
<방송 부문>
▶ 대상: 류승룡
▶ 드라마 작품상: '은중과 상연'
▶ 예능 작품상: '신인감독 김연경'
▶ 교양 작품상: '다큐인사이트 - 우리의 시간은 빛나고 있어'
▶ 여자 최우수 연기상: '미지의 서울' 박보영
▶ 남자 최우수 연기상: '메이드 인 코리아' 현빈
▶ 여자 조연상: '파인: 촌뜨기들' 임수정
▶ 남자 조연상: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유승목
▶ 여자 신인 연기상: '애마' 방효린
▶ 남자 신인 연기상: '폭군의 셰프' 이채민
▶ 여자 예능상: 이수지
▶ 남자 예능상: 기안84
▶ 연출상: '미지의 서울' 박신우
▶ 극본상: '은중과 상연' 송혜진
▶ 예술상: '더 시즌즈' 음악감독 강승원
<영화 부문>
▶ 대상: 유해진
▶ 작품상: '어쩔수가없다'
▶ 감독상: '세계의 주인' 윤가은
▶ 여자 최우수 연기상: '만약에 우리' 문가영
▶ 남자 최우수 연기상: '얼굴' 박정민
▶ 여자 조연상: '휴민트' 신세경
▶ 남자 조연상: '어쩔수가없다' 이성민
▶ 여자 신인 연기상: '세계의 주인' 서수빈
▶ 남자 신인 연기상: '왕과 사는 남자' 박지훈
▶ 각본상: '굿뉴스' 변성현, 이진성
▶ 신인 감독상: '3670' 박준호
▶ 예술상: '파반느' 음악감독 이민휘
▶ GUCCI IMPACT AWARD: '왕과 사는 남자'
<연극 부문>
▶ 백상연극상: '젤리피쉬'
▶ 젊은연극상: 극단 불의 전차 연극 '장소'
▶ 연기상: '프리마 파시' 김신록
<뮤지컬 부문>
▶ 작품상: '몽유도원'
▶ 창작상: '에비타' 안무가 서병구
▶ 연기상: '비틀쥬스' 김준수
<특별상>
▶ 네이버 인기상: 박지훈, 임윤아
사진 : 62회 백상예술대상 with 구찌 [JTBC]

















